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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성국 발해가 멸망한 이유 3가지

by 모리크넘 2021. 6. 6.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크게 번성했던 발해는 9세기 무렵부터 국력이 급격히 하락하더니, 결국 거란에 의해 926년에 멸망했습니다. 발해가 멸망하게 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최근 주장된 몇 가지 이유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이유
  • 9세기 말 국제 정세 판단 실수
  • 부족 통합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한 거란의 공격
  • 발해 내부 분열

발해 멸망 이유

발해는 925년 시작된 거란의 공격으로 926년 멸망을 하였는데요.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했다는 내용은 중국의 정사서인 요사 권 2, 본기 2, 태조(하) 부분에 926년 봄에 부여성을 함락시키고, 성에 있는 군사들을 모두 처단하였다고 나옵니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근거는 있으나, 어찌하여 멸망에 이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을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최근 발해 멸망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주장된 내용을 위주로 해동성국 발해가 멸망한 이유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멸망 이유 1 : 9세기 말 국제 정세 판단 실수

발해가 멸망한 이유로 9세기 말 혼란스런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여 멸망했다고 합니다. 발해는 중립적 외교에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는데요. 당나라와 손을 잡는 다던가, 돌궐에 조공을 받치는 등의 외교술을 통해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꾀하였습니다. 발해가 건국된 이후부터 8세기 말까지는 당나라, 거란, 고려, 일본 등 주변 국가 간에 경제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외교적 관계를 맺으며 실리를 챙기게 됩니다. 

하지만, 9세기 부터는 기존에 중시했던 경제적인 관계보다는 군사력을 키워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지만, 발해는 이러한 국제적 정세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기존에 경제적인 관계만을 중시하다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국이라 불리며 중국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당이 907년 멸망하고, 거란족이 부족을 모두 통합하고 중원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당이 없는 입장에서 거란에 다음 목표는 당연하 발해가 될 것이 뻔하였지만, 발해는 이러한 국제적 정세를 파악하지 못해 군사력을 키우거나 전쟁에 대비하지 않아 결국에 거란에게 926년에 멸망하게 된 것이지요. 역사에서도 보면 925년 12월에 침공하여, 단 며칠 만에 부여성을 함락하는 등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내용으로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멸망 이유 2 : 부족 통합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한 거란

중국 정사서 요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발해가 멸망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거란입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부족을 통합하고, 당이 멸망한 시기에 영토 확장과 발해에 대해 쌓였던 원한을 갚기 위해 발해를 공격하게 됩니다. 과거 거란과 발해는 당나라를 사이에 두고 잦은 싸움과 갈등이 있었는데요. 야율아보기가 부족을 통합한 이후부터 보다 관계가 악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전까지는 거란도를 둘 정도로 상호 국가 간에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으며, 거란이 고려에 화친을 요청하자, 태조 왕건은 거란이 발해와 화목하게 지내다가 화친 맹서를 어기고 멸망시켰다고 하며 거절하게 되는 내용으로 보아, 거란과 발해는 우호적인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907년 야율아보기에 의해 부족이 통합된 이후 발해를 지속 공격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가 없던 발해는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한 거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멸망 이유 3 : 발해 내부 분열

발해가 멸망한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발해 내부의 분열 때문입니다. 발해는 소수의 지배층인 고구려인과 다수의 피지배층인 말갈족이 구성된 피라미드 구조의 형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말갈족은 항상 불만을 갖게 되고, 발해 내부에서는 잠재적인 불만과 분열의 조짐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또한, 태조 왕건에 의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건국되면서, 발해의 많은 고구려인들이 발해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배층인 소수의 고구려인들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버리고 고려로 넘어가면서 발해는 고구려의 대한 계승의 의미도, 지배층인 고구려인의 절대적인 숫자도 줄어들게 되어, 스스로 무너져 버리게 된 것이지요. 발해는 멸망 이후 2백 년간이나 부흥운동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발해 내부의 분열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다는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으나, 당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군사를 키우지 않았으며, 부족 통합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갖게 된 거란의 공격, 그리고 발해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에 갈등과 고구려인의 고려 망명 등으로 인해 발해는 멸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동성국 발해. 고구려 유장인 대조영이 건국하였으며,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룬 우리의 숭고한 역사임을 틀림없습니다. 다만,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도 쉽게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발해의 패망으로 백성들은 거란의 피지배층, 고려로의 망명, 일부는 부흥운동을 지속하는 등 험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하니,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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